책고래 블로그

나나의 네버엔딩 스토리 - 금나나 본문

문학/에세이

나나의 네버엔딩 스토리 - 금나나

책 고래 2020. 9. 25. 23:41
반응형

 

p.273 하버드 도서관, 새벽 4시

내가 1학년일 때 승규 오빠가 찍은 한 장의 사진이 인터넷에서 큰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그것은 '하버드 도서관, 새벽 4시'라는 제목의 사진이었다. 이 사진은 실제로 승규 오빠가 기말고사 기간이었던 어느 날 새벽 4시에 촬영한 것이었다.

 사진 속에서 도서관은 몇 개의 빈 자리를 제외하고는 여전히 만석이다. 학생들은 저마다 노트북을 켜 놓고 페이퍼를 작성하거나 두꺼운 참고 도서를 읽느라 여념이 없다. 가슴에 책을 안고 지쳐 잠이 든 학생과 참다 참다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꺾고 곯아떨어진 학생을 제외한다면 도서관은 새벽 4시라는 것이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대단한 열기를 내뿜고 있다. 

 

 1학년 때, 내가 기숙사 방에서 눈을 비비고 살을 꼬집어가며 새벽까지 공부를 하고 있노라면 룸메이트 엘리스가 시체처럼 창백한 얼굴이 되어 도서관에서 귀가하곤 했다. 

 "한두 시간 더 공부하려고 했는데 누가 코를 열심히 골기 시작했어."

 우리는 세 시간 정도 눈을 붙인 후 허둥지둥 일어나 고양이 세수만 하고 섹션 수업에 들어가곤 했다.

 공부를 하는 학생들의 열기를 느끼기 위해 꼭 도서관에 가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기숙사 방에서도 도서관에도, 심지어 교정의 잔디밭이나 강의실에서도 얼마든지 느낄 수 있다. 날씨가 좋아지면 아이들은 배낭 하나에 전공 서적 두세 권을 넣고 하버드 야드로 쏟아져 나온다. 그늘이 좋은 나무 하나를 차지하면 그 날의 공부 장소는 바로 그 곳이 된다. 벤치 곳곳에 비스듬히 앉아 하늘 한 번 올려다보고 책 한 번 내려다보며 공부하는 아이들도 흔하게 볼 수 있다. 

 나는 어디서나 느낄 수 있는 하버드의 이 학구열이 늘 자랑스러웠다. 그것은 나에게 긍지이자 자극이었다. 눈꺼풀이 천근만근 무거워 그냥 누워버리고 싶을 때도 어디선가 눈에 불을 켜고 공부하고 있을 하버드의 라이벌들을 떠올리면 도무지 누울 수가 없었다.

 

 '지금 자면 꿈을 꾸지만, 지금 공부하면 꿈을 이룬다.'

 나는 손바닥으로 뺨을 철썩철썩 때리기도 하고 팔뚝을 꼬집기도 하면서 정신을 차렸다. 한 잔의 뜨거운 커피를 마시고, 그래도 졸리면 냉장고 안에 상비되어 있는 레드불을 마셨다.

 하지만 어디 이러한 공부 열기가 하버드 대학에만 있을까? '하버드 도서관, 새벽 4시'라는 사진이 인터넷에 퍼진 후, 어느 날 '서울대 도서관 새벽 1시'라는 동영상이 인터넷에 올라왔다. 도서관은 그야말로 책장이 넘어가는 소리 외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여러 권의 책과 참고 자료를 뒤져가며 밤이 깊은 줄도 모르고 공부하는 학생들, 졸음을 견디다 못해 엎드려 자고 있는 불쌍한 학생들, 책상에는 어김없이 수많은 일회용 종이컵과 하버드의 레드불에 해당하는 박카스 병이 놓여 있었다. 책상과 의자 등의 환경만 다를 뿐, 그곳은 하버드 도서관의 풍경과 너무나 똑같았다. 

 

  단 한 번밖에 오지 않는 찬란한 20대가 도서관에서, 책상 앞에서, 캠퍼스 곳곳의 공부 장소에서 하루하루 지나간다. 젊음을 만끽해야 할 20대, 실컷 놀아도 보고 불같은 사랑도 해보아야 할 20대, 그 20대의 정열이 책과 시험지, 수많은 페이퍼와 성적표에서 불태워진다. 세상 어느 곳의 20대가 치열하지 않을 수 있을까? 세상 어느 곳의 20대가 고뇌하지 않을 수 있을까?

  우리는 공부하면서도 수없이 의심하고 수없이 두려워하며 절망과 희망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곡예를 한다. 과연 이 방법이 성공할까? 나는 과연 내가 원하는 그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을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공부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먼 훗날 인생을 뒤돌아보며 나의 20대는 참으로 뜨겁고 치열했노라고, 꿈을 위해 노력했노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기 위해서다. 20대에 뜨겁게 열정을 불태운 자만이 눈부신 미래를 맞이할 수 있으므로! 더 나아가 매순간 열정으로 이뤄낸 밑거름이 있어야 한 사회, 한 나라, 그리고 전 인류의 진보에 보탬이 될 수 있으므로!

  항상 나를 알 수 없는 전율에 휩싸이게 하는 하버드 로고 속의 VERITAS(진리)! 오늘도 난 VERITAS를 가슴에 새기며 진리 추구를 향한 내 열정을 불태울 것이다. 

 진리 추구만이 더 나은 세상을 가져오므로!

 진리 추구만이 영혼의 허기를 달래주므로!

 

반응형